
미카제 아이x현비파
노래의 왕자님
향비파
* 제 개인 동양풍 판타지 세계관이자 소설인 <붉은 꽃의 향연>의 이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 비파는 인간이고, 아이는 수족입니다.
3년 전, 대륙에 자리 잡고 있던 네 국가 중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강영국이 황태후 권희서의 배신으로 멸망하면서 하나둘씩 멸망해갔다. 수족(獸族)은 그들이 가진 강력한 힘으로 인간들을 통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수족들은 4대륙 가운데 있던 자신들의 섬에서 나와 대륙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4대륙에 퍼져 있던 인간들은 그들을 통솔해줄 왕실과 황실을 잃고 이제 동쪽 나라 수환국 환상의 숲 안에 모여 살게 되었다. 한 때 강영국의 황제로 앉아있던 단화와 그녀의 호위무사 송호아는 네 대륙을 돌아다니며 함께 수족을 칠 동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현비파는 두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제 갓 20살이 된 젊은 여인, 단화의 뒤에 서른이 넘은 남자, 송호아가 목석처럼 서있었다. 조금 느긋해 보이는 눈은 마치 다른 곳을 보는 것처럼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다시 단화를 보았다. 완전히 성숙해진 눈에는 이제 어린 시절 순수함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황제이던 14살 시절에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은 이제 갑옷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촌 오라버니이자 강영국 재상이 남긴 유품만이 그녀의 목에 걸려있을 뿐이었다. 현비파는 손에 잡은 찻잔을 보았다. 녹색 찻물이 창 너머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제가 두 분께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없을 것 같은데요.”
단화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찬가지로 찻물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현비파씨에겐 지금 저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제일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입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현비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의 나라가 멸망하고 얼마 안 있어서 단화와 송호아를 중심으로 모인 반수족파들이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목적은 매번 똑같았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수족에 관한 정보를 쥔 ‘미카제 아이’ 때문이었다. 수족들이 몇 백 년을 자신들의 섬 안에서 갇혀 살았던 탓에 인간들의 손에는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서쪽 나라 자무국에서 살고 있다는 수족과 인간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들의 나라가 있던 당시에도 소문으로 들려왔다. 그 소문 탓에 인간들의 나라가 멸망한 후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둘이 받은 고통은 상당했다. 자신들의 터전과 가족을 빼앗아간 수족에 대한 인간들의 증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비파와 미카제 아이가 자무국 숲에서 숨어살기 시작한 것도 그 탓이었다. 현비파는 다시 한 번 차 한 모금을 마셨다.
“반길 리가 없다는 것도 알겠네요.”
“미카제 아이씨가 이 곳에 계신다는 것도 알고 왔습니다. 우리에겐 그가 필요합니다.”
“그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관두시죠. 수족의 발전은 굉장한 속도를 자랑합니다. 10년 만에 사해를 건널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고 그것으로 강영국을 멸망으로 몰아간 자들입니다.”
“우리는 수족의 관습과 특성, 기술을 알고 싶습니다.”
“그런 걸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인간들은 죽어가고 있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겁니다. 수족이 짓밟은 땅을 되찾아서 그들에게 착취를 당하며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카제 아이씨가 가진 정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도와야할 이유는 눈꼽만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비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돌아가 달라며 외면했다. 단화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한숨을 뱉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단화는 다시 한 번 현비파를 보았다. 현비파는 돌아보지 않았다. 창 너머로 시선을 던진 채 두 사람이 포기할 때까지 돌아서지 않았다. 단화가 말했다.
“다음에는 좋은 대답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하지 마시죠.”
단화와 송호아가 집을 벗어나자마자 현비파는 집을 나섰다. 강 부근으로 가자마자 현비파는 상류 쪽으로 향했다. 상류는 하류 쪽보다 숲이 더 울창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가지각색의 꽃이 만개해있다. 현비파는 상류에 도착하자마자 연인을 보았다.
“돌아갔어요.”
“그 정도 도와주는 건 괜찮은데.”
“그게 한두 번 이어지다보면 계속 찾아올 거예요. 그러면 분명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겠죠.”
“강영국의 황제는 강압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어.”
“확신할 수 없죠. 본래 왕족이었던 사람이니까요.”
미카제 아이는 옆으로 다가와 앉은 현비파를 보았다. 현비파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고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며 그가 말했다.
“이곳을 나갈 생각은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아요. 그렇지만 아이는 도와주고 싶은 것 같아요.”
“그들이 자꾸 찾아와서 비파를 귀찮게 하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얼른 정보를 주고 보내버리고 싶어.”
“한두 번으로 끝날 리가 없어요. 그리고 설령 강영국 황제가 아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주변 인간들이 그냥 둘 리가 없어요. 수족에 대한 증오가 엄청나니까요.”
“비파가 원하지 않는다면 난 움직이지 않을 거야.”
현비파는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단화가 찾아오기 한 달 전 인간들이 그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찾는 인간들은 대개 수족의 국가에게는 힘이 닿지 않는 대신 그들 가까이 존재하면서 홀로 떨어져 있는 수족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가진 증오의 창이 미카제 아이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일 이후로 그녀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그가 가진 하얀 날개를 꺾어버리려고 했던 날카로운 손길들을 피해서 다시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멸망해가는 인간들보다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은 옆의 연인이었다.
“내가 많이 나쁜가요?”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나도 인간이잖아요.”
“비파에게 죄책감이 있다면 움직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그것을 덜기 위해 움직여주길 바란다면 나는 그대로 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비파를 두고 나설 순 없어.”
“왜요?”
“비파는 불안해보여. 내가 옆에 있어야 해.”
현비파는 연인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그이니만큼 누구보다 그녀의 상태를 잘 알 터였다. 현비파는 다시 그 품에 고개를 묻었다. 결국 두 사람이 단화와 송호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것으로 불러오게 될 일들이 얼마나 클지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서로만을 보고 싶었다. 그게 현비파와 미카제 아이의 소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