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나이트x프로인트
라테일
아가미
교회 창밖에는 어둠이 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회색 붓터치 같은 구름이 간간이 보였고, 작은 별이 하나 짧게 빛나더니 지상을 향해 내달렸다. 프로인트는 그 작은 것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내일이면 죽음에 던져질 자신이 저 별똥별 같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세계의 종말도 멀리에서는 아름다운 유성우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 우주 건너 멀리에서는.
불과 며칠 전, 금이 가 부서진 비프로스트의 유리는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처럼 화려하게 몸을 불태웠다. 그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뀌기까지는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대지에 내리퍼부은 유리 조각은 숫자로도 헤아리지 못할 목숨을 앗아갔다. 수라도에서 끌어온 것 같은 비명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궤도 엘리베이터의 파편 아래 뭉개졌다. 그것은 지엔디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프레이오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프로스트의 붕괴와 더불어 시공간이 뒤틀린 탓인지 임페리얼 게이트가 닫히고 프레이오스 역시 공황에 빠졌다. 마법사들의 노력 끝에 다시 임페리얼 게이트를 건널 수 있게 되었으나, 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더욱 문제인 것은 지엔디아로 가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었다. 지엔디아는 이미 대륙 자체가 여기저기 짓눌리고 깔린 시체 더미의 난민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그마저 언제 사라져 없어질지 모르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그 아비규환 속으로 가기를 꺼렸다. 프레이오스에 있으면 어찌 되든 1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이대로 임페리얼 게이트를 아예 닫아야 한다, 지엔디아의 사람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 양측이 대립하는 동안 어떻게든 이야기는 진행되어, 지엔디아로 보내지는 파견단이 만들어졌다. 지엔디아로 떠나는 날은 당장 내일. 날짜가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이탈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파견단은 200명 가까이 되었으나, 세계적인 재해 수준에서 보면 아주 적은 수에 불과했으며 이들 중 자원해서 가는 사람은 스물 남짓이었다. 그들은 마지막이 개죽음이 되더라도 희생은 고귀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프로인트 역시 스무 명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개죽음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엔디아에는 도움을 바라는 자들이 있고 그녀에게는 신념이 있으며, 그것만으로 프로인트가 지엔디아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로 마지막이 온다면 추구하던 길을 따라 최후로 가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테러나이트는 핏방울 같은 두 눈 가득 이상한 감정을 담았다. 경멸과 비슷하면서도 사납지 않았고 슬픔과 비슷하면서도 애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프레이오스에 남는 사람이었다. 오르카의 성소에서 태어난 서브클래스들은 프레이오스에 남기로 결정되었기에, 지엔디아로 넘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프로인트는 그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주어진 마지막 밤. 프로인트는 조용히 보내고 싶었기에 빈 교회에서 자기로 했다. 잘 곳이라고는 의자밖에 없었지만, 그녀에겐 그 딱딱한 곳이 비로드 침대보다 편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던져진 동전처럼 삶과 죽음을 겨우 운으로 왔다 갔다 할 목숨이기에, 좋은 잠자리는 필요 없었다. 프로인트는 절망 속에서 단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프로인트가 기도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스산한 공기가 교회 내부로 훅 밀려 들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묵직하게 떨어지는 발걸음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발소리가 잔잔한 수면 같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시죠.”
프로인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보지도 않는 거냐.”
발소리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프로인트는 그제야 뒤돌아보았다. 매일 보던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사납게 번득이던 눈이 어째서인지 무척 피곤해 보였다. 푹 꺼진 눈두덩 때문에, 프로인트는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그를 알아보지 못할뻔했다. 프로인트가 놀란 기색을 숨기는 사이 테러나이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그 말을 듣자 걱정이 모두 증발하고 대신 짜증이 가득 차올랐다. 마지막까지 소모적인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프로인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겨우 그런 것을 물어보러 오셨습니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테러나이트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열었지만, 곧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을 삼키는 것은 프로인트에겐 처음이었다. 그 낯선 모습에, 프로인트는 이것이 마지막임을 새삼 실감했다. 몇 번이나 망설이던 테러나이트는 마침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말 하지 않겠다. 널 파견단에서 빼낼 거다.”
“네?”
프로인트는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환청이 아니라면 절대로 테러나이트가 할 리 없는 말이었다. 그 의아함이 표정으로 새어 나왔는지, 테러나이트는 “멍청한 얼굴 하지 말도록”이라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프로인트에겐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테러나이트의 말은 그녀의 의사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지독히도 독단적인 것이었다. 이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구나. 세이버보다는 이쪽으로 와라, 그렇게 말하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벌써 3개월 전의 첫 만남이었음에도. 테러나이트는 짜증으로 표정이 일그러진 프로인트에게 말했다.
“너,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프로인트는 그렇게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테러나이트가 말을 이었다.
“지엔디아로 파견되는 것이 싫어 도망치거나 자살하는 녀석들도 나오고 있다.”
1분 1초 속보로 전해오는 것 중에 희소식은 없었다. 비프로스트는 완전히 무너졌으며 이제는 아스가르드마저 위험하다는 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이었다. 이 상황에서 지엔디아로 가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버리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잔해에 깔려 죽을 바에는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인트는 제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공포를 애써 모른 척하며 말했다.
“그럼 인원이 부족할 테니 더욱 제가 가야겠군요.”
프로인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사고와 말이었지만, 테러나이트에겐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기껏 도망치게 하려고 왔더니, 하는 말이라고는 오로지 죽음을 향한 말뿐이었으니까. 테러나이트는 으득, 이를 갈았다. 프로인트는 늘 여유롭던 그의 표정에 처음으로 분노가 어린 것을 보았다. 꽉 쥔 주먹이 금방이라도 뺨을 후려칠 것 같았지만, 어차피 내일 죽을 목숨이니 오늘 죽도록 맞아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기분은 무척 더럽겠지만, 그 이상으로 테러나이트의 기분도 좋지 않을 테니. 그러나 테러나이트는 주먹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안달 났어?”
하나의 감정으로만 가득 들끓는 목소리가 났다. 최전방에 서서 싸울 때 가득했던 살의처럼, 명령을 내릴 때 자만과 자신이 가득했던 것처럼, 어떤 감정이 그에게서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강한 자기주장 같은 그 감정이 프로인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감정은 서로를 향하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이기적이었기에. 프로인트는 테러나이트의 마음을 못 본 척하며 대답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진담이었음에도 시시한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아스가르드가 언제 지상에 처박힐지도 모르는 판국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말하고도 우스웠다. 역시나 테러나이트에겐 농담으로 들렸던 것인지, 그는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 말에 따라!!”
“거절하겠습니다!!”
격해진 목소리가 교회 안에 가득 울렸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색색으로 조각난 빛처럼 수많은 감정이 흩어져 두 사람 위로 내려앉았다. 짙어진 밤만큼 희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왔다. 프로인트는 냉정해지기 위해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쌓아온 추억, 생에 단 한 번뿐이었던 설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길……. 그 모든 것이 소중했다.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던 저 손을 붙잡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언뜻 머리에 스칠 만큼 테러나이트가 소중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연모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지켜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을 신념을. 프로인트는 마침내 눈을 떴다. 연녹색 눈동자가 성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러나이트에게 미소 지었다.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제 안의 당신을, 당신 안의 저를.”
테러나이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프로인트의 표정이 너무나도 완고하고 편안해 보여서, 당장 내일 사선으로 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표정에는 빛이 가득했다.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빛이. 그녀는 희망을 안은 채 절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무척이나 눈이 부셔, 테러나이트는 더는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단 하나밖에는.
“…그럼, 죽지 마라.”
괴로운 표정을 짓는 테러나이트 앞에서, 프로인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어 보였다.
정해져 있는 예언처럼 지엔디아를 덮은 종말의 물결은 프레이오스까지 집어삼켜 세계는 꾸준히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프로인트는 그 물결에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같이 흘러가기보다는 꿋꿋하게 그 속에 서 있고 싶어 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프로인트는 마지막까지 좁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