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토미네 키레이 X 타카바야시 미야비
FATE시리즈
타셰
“움직이지 마라, 미야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는 흑건은 허공을 가르고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 뒤쪽에 있던 괴물에게 박힌다. 흑건이 키레이의 손을 떠나 목표물에 명중할 때까지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간신히 내쉴 수 있게 된 것은, 뒤에서 느껴지던 좀비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위협이 물러간 다음이었다.
선 자리에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끔찍하다고 생각했을 모습의 좀비가 목에 흑건을 꽂은 채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놀랍게도 그것을 보면서, 이 좀비는 그래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네, 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양팔과 다리가 멀쩡하게 잘 달려있고, 얼굴 피부도 그런대로 붙어 있으니까. 어제 본 무리는 정말 끔찍했지. 한 쪽 다리나 팔이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고, 척추가 끊어지고서도 바닥을 기어 오던 모습은 꿈에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다. 최근에 들어서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고 잠을 자더라도 매번 악몽을 꾸는 게 일상이 아니었더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만큼.
키레이가 아니었으면 나는 단 하루도 이 상황에서 살아남지 못했겠지. 의식 한 구석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날 살린 횟수는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아서 나는 이미 그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어느새 역으로 안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몇 번이 되었든 그가 있으면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우리는 머지않아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도시와 도시를 전전하며 방랑하는 것보다는 과거에 조금 더 가까운 일상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좀비를 두고 너무도 안일하게 몸을 돌린 것은 전부 내가 방심한 탓이었다.
***
붉게 충혈 된 눈을 하고 이쪽을 보는 이의 얼굴은 피부가 하얗게 질려 그 아래의 혈관이 도드라져 보일 뿐 그 흔한 상처 하나 없어서, 너무도 익숙한 이를 겹쳐 보게 한다. 원망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이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잠들지 않는 이성은 이 상황을 또렷이 이해했지만 상황이 주는 충격에 나는 잠시 움직이는 법을 잊고 말았다.
달아나고 싶은 현실은 지독하게 나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손에 쥔 흑건의 감각이 이상하게도 무디다. 손의 일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익숙한 흑건을 들어서, 눈앞의 그것을 겨냥하고, 가볍게 던져 머리를 관통시키면 끝나는 일이다. 가까운 곳에서 비틀거리는 목표물은 지금껏 노렸던 어떤 것들보다도 맞추기 손쉬운 표적이다. 지금껏 수없이 해왔던, 너무도 쉬운, 쉽다고 자부했던 일일 것인데.
그러나 그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기만 하면, 비록 초점이 없는 눈이라 할지라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나는 너를 쏠 수 없다, 미야비. 자각하기에도 우습기 짝이 없는 촌극일지언정, 어리석은 자라고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나는─.
그 순간, 카악, 하고, 변해버린 너는 소리를 높인다. 파랗게 질린 입술을 타고 붉은 피가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발작을 일으키듯이 몸을 뒤트는 너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사랑스러움도, 상냥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내지르는 괴로운 듯한 비명이 나의 온 몸을 갈기갈기 내어찢는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에는, 그래, 이제 고통만이 남아있었다. 아아, 그렇다면 내가──내가 너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저것은 너이지만, 동시에 네가 아니니까.
그러나 신부라는 직책이 그러하듯, 나는 너를 명부로 인도하고 성불을 빌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를 네가 궁금해 할 것 같으니 말해줄까. 왜냐하면 그 날의 문답을, 나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됐어, 좀비가 되면 키레이만 쫓아갈 거예요.’
너에 관한 것이라면, 단 하나도 잊은 것이 없다. 거짓말처럼 세상이 몰락하고 있었어도, 죽음에 물들어 버린 세상에서 너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호오. 미야비 너는 좀비가 되더라도 그다지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만.’
‘……그래도 물리면 아플걸요?’
이렇게 세게 물 건데, 앙, 하구. 짐짓 토라져 나를 향하는 너의 시선은, 지금 나를 보는 너의 시선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의 품에 안겨오던 너의 입술은 분명 조금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날의 대화 주제가 그저 가정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널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만일 그 이유가 후자라면 나는 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다. 너의 신뢰에 보답해주기는커녕, 내가 아주 잠깐의 불온한 평화에 마음을 놓았던 탓에, 너는 내 앞에서 생명을 잃고 말았으므로.
바닥에 쓰러져있던 낯선 사내에게 종아리를 물어 뜯기던 순간 너는 나를 보았다. 네가 입에서 피를 토하던 순간 그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은 나를 향한 원망이었을까. 아니, 아닐 것이다. 너는 나에게 분명, 도망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 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렇게 작은 좀비는 별로 무섭지도 않다.’
‘지금 나 무시한 거죠?’
‘글쎄다. 귀엽다면 몰라도.’
‘뭐가 귀여워, 도망가야죠, 바보야!’
아아, 그래, 너는 그렇게도 상냥한 여자였다. 그 날 나에게 핀잔을 주던 너의 목소리는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귓가에 울려오는데, 눈앞의 너는 네 목소리가 아닌 것만 같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낸다. 그러나 네 입에서, 나를 향해 내뱉는 소리라면, 나에게는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것을 어쩌랴. 세상이 나를 미쳐버렸다고 욕할지언정 피부가 변색되고 관절을 뒤틀며 걷는 너의 모습에서 나는 여전히 과거의 너를 본다. 그 선명하고 따스한 웃음을 본다.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던, 한없이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웠던 너를.
그러니, 나는.
‘별로 무섭지도 않을 것 같은데, 꼭 도망칠 필요가 있나.’
너에게 했던 나의 약속을 지킨다. 지금의 너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거 봐라. 조그맣지 않나.”
혼자 중얼거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드는 너를 끌어안았다. 익숙하게 품에 안겨오는 너의 몸은, 조금 차가웠으나, 여전히 내 한 팔에 안겨들 정도로 작고, 너의 옷에서는 지독한 피 냄새와 함께, 네가 즐겨 사용하던 화장품 냄새가 났다.
네 머리 뒤쪽에 칼을 댔다. 날의 길이는 충분히 길어서 네 머리와 나의 목을 충분히 동시에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끔찍한 모습이 되어 죽지도 살지도 않은 반송장의 꼬락서니로 걸어 다니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고 너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옷가지를 물어뜯고 있는 네 뒤통수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본 다음, 힘을 주어 칼을 찔러 넣었다.
내가 네게 품은 감정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