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로저스x송 윤
워킹데드
마곳
*워킹 데드의 세계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바이러스의 발발로 인해 죽은 자가 '워커(스킨이터, 바이터, 로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라는 일종의 좀비로 소생하게 되고, 이렇게 소생한 좀비들은 인간과 동물을 먹이로 삼아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해 세계는 아포칼립스 상태에 돌입한다. 워커에게 물리거나 긁히게 되면 고열을 동반한 고통에 시달리다 사망한 후 워커로 변화하며, 바이러스가 공기로도 감염되기 때문에 생존자들 역시 사망 이유를 막론하고 사망 이후에는 워커로 변화한다. 이런 워커들을 완전히 죽이는 방법은 뇌를 파괴하는 것 뿐이다.
품 안의 온기가 쌔근거렸다. 대릴은 제 품에 붙들린 칼을 더 꾹 끌어안으며 건너편의 윤과 시선을 교환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에 푹 젖어 희게 질린 얼굴로 계집애는 석궁을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불찰이었다. 설마 장의사의 집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장의사가 사실은 시체 안 장기를 들어내 팔아먹는 제법 질 나쁜 쪽이었다는 것도. 아마 제가 내장을 들어내던 시체에게 산 채로 뜯어 먹혔을 장의사까지 합세해 좁은 지하실 안 쪽으로 빠져 나온 워커들이 우는 소리와 죽은 손들이 지하의 시체 보관소의 철문을 덜걱 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는 어느 날 밤에 릭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문득 떠올렸다. 병원에서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었어. 걷다 보니 철문이 쇠사슬로 잠겨 있었고,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지. '열지 마시오, 죽은 자들이 있음'... 그에게 어깨가 붙들려 다급하게 숨을 몰아 쉬던 릭의 어린 아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그와 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기서 칼을 혼자 보냈다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른 침을 울컥 삼키고 칼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손을 풀었다.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다 박은 눈동자가 혼란 속에서 파르르 떨렸다.
"잘 들어라, 여기 벽에 붙어있어. 나랑 윤이 길을 뚫으면, 그 때 바짝 붙어서 뒤로 따라와. 총은 가지고 있냐?"
"가, 가지고 있어요."
"장전 할 줄은 알고? 쏠 줄도 알아?"
"네, 네, 알아요."
그럼 됐어. 짤막하게 말을 끊은 그는 어린 것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굽혔던 고개를 들어 건너편의 윤을 바라보았다. 계집애는 허벅지 중간쯤에 매달아 놓은 손도끼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희게 질린 입술 위를 얼마나 질겅거렸는지 입술 한 켠으로 피가 몰려 있었다. 그는 깔깔하게 마른 입 안에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들은 계집애가 낚아 올려진 고기마냥 어깨를 퍼드득 떨더니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길어져서 헐렁하게 묶어 내린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 물방울처럼 튀었다가 녹아 들었다. 그는 천천히 입술 위로 손가락을 세워 눌렀다가, 워커들이 있을 공간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그리고 계집애가 제 석궁의 시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는 것을 보며 속으로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짤막하게 숨을 터트리는 끝으로 화살이 공기를 갈랐다. 사람의 머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른 것을 꿰뚫는 소리는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옆의 계집애가 침착하게 화살을 매기며 나직하게 말 끝을 흐렸다. 왼쪽에 둘, 오른쪽엔 적어도 셋... 그는 등 뒤를 흘끔 바라보고 칼이 그들의 뒤쪽에 바짝 따라 붙은 것을 확인했다. 릭이 제법 제대로 가르쳐 놓았는지 총을 쥔 폼만은 정확했다. 그는 볼 안쪽을 한 움큼 씹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렇게 부패한 흰자가 새까맣게 부패한 얼굴 위를 한 바퀴 굴렀다. 시위를 당기자 눈구멍 안 쪽으로 화살이 정확하게 박혀 들었다. 하나. 그는 침착하게 수를 셌다. 그리고 둘.... 등 뒤에서 한 번 숨 끓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뭉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목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화살 얼마나 남았냐?"
"둘.... 아니 하나....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염병 진짜... 하고 그는 알 수 없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칼이 떨리는 손으로 총의 잠금쇠를 풀며 나도 할게요, 하고 말을 보탰다. 그러나 그는 짧게 신음하며 계집애와 등을 붙였다. 바깥 쪽은 안전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바깥보다 안 쪽이 더 늦게 죽게 될 것인가? 왼쪽에서 다시 한 번 그렁그렁 부패한 시체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짤막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눈 안쪽으로 아프게 찔러오는 남은 화살의 수와 양쪽으로 갈라진 복도 끝에서 터덕터덕 발을 딛는 소리가 죽음처럼 울려, 더 이상 재보는 것조차 잊고 그는 급하게 계집애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금방 눈치를 챘는지 계집애는 칼의 손목을 쥐어 잡고 냅다 그와 발을 맞추어 달렸다. 어벙벙한 채 질질 끌려오는 어린 것의 머리 위로 뛰어, 칼! 지금 당장! 하고 말간 목소리가 쩌렁쩌렁 호령을 했다. 세 쌍의 발이 어지럽게 바닥을 울리자 막 코너를 돌아 중앙의 공간으로 들어선 시체들이 그륵 거리며 목을 꺾었다. 그는 어린 것을 사다리 위로 냅다 떠밀고 계집애가 반 쯤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다리 위로 뛰어 올랐다. 저 위에서 지상으로 올라간 칼을 발견했는지 릭과 로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러진 손톱과 썩어빠진 살점이 달라붙은 손이 바지 자락을 잡는 순간 지상으로 나동그라지듯 올라선 계집애가 다급하게 기어와 손을 뻗었다. 아저씨! 그는 있는 힘껏 제 바지 자락을 쥐어 잡은 워커의 머리통을 걷어차고 그 손을 잡았다. 비틀거리는 시체를 넘고 넘어 죽은 자가 또 다시 달라붙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후려 갈겨도 갈겨도 늘어나는 워커들의 수에 움켜쥔 손을 잡아당기는 윤의 얼굴이 점점 더 공포에 물들었다.
그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 그가 다시 한 번 썩어서 살점이 너덜거리는 머리통을 발 뒤꿈치로 힘껏 후려갈겼다. 온 신발과 바짓단에 핏물이 뭉그러졌다.
"누가 얘랑 같이 좀 끌어올려! 빌어먹을, 릭! 릭!"
"놓지마, 놓지마, 놓지 마요, 아저씨, 놓지 마!"
단단하게 틀어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흰 팔뚝 위로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도록 힘을 주어 당기는 윤의 허리를 휘어감은 글렌이 잇새 사이로 부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힘을 주어 그를 끌어 올리려 애썼다. 로리에게 칼을 맡긴 릭이 뛰어 들어 그의 나머지 손을 당기고 나서야 다리를 쥐어 뜯으려 들던 망자들의 손길이 떨어져 그는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다급하게 사다리를 올라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동그라졌다. 릭과 글렌이 워커들이 그들에게 닿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티독이 다급하게 지하실 문 위쪽으로 판자를 박으러 뛰어나왔다. 괜찮아요?! 뛰어온 사람들이 그의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아직도 멍멍하게 울리는 머리를 어찔하게 흔들었다. 순간적으로 붙잡혔던 다리에 아직도 냉기가 고여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머리를 흔들자 윤이 다급하게 그의 품 안에 걷지도 못하고 무릎 걸음으로 뛰어들었다. 떨리는 입술이 그의 귓불에 짧게 붙었다 떨어졌다. 아저씨. 그의 뒷머리를 헝클리는 손길이 처참하게 떨렸다. 끌어안은 목덜미에 눅진하게 식은땀이 고여 비린 물 내음이 풍겼다. 아저씨. 계집애가 다시 중얼거렸다. 호흡 끝에서 울음이 떨어졌다. 그는 비 맞아 떨어진 작은 새처럼 온 몸을 후드득 떠는 어린 연인을 끌어안았다. 맞닿은 상체에서 터질 듯이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나.... 나는....."
"....꼬맹아."
"나..... 나..... 아저씨 나아....."
손가락에 걸리는 머리카락 끝이 투둑 투둑 끊어졌다. 그는 멀거니 눈을 깜박이며 목덜미 끝으로 섧게 터지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한 두 번도 아닌 일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망자들의 손 끝에 발목이 잡히기도 여러 번이었고 기를 쓰고 그 머리통을 터트려 달리는 것도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죽은 시체가 살아있는 이들의 목 줄기를 끊는 것을 본 일도 제법 되었으며 썩어빠진 손가락 끝으로 허공을 휘젓는 것을 보는 것도 손 꼽아 세자면 끝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제 다리가 죽은 이의 손길에 쥐어 잡혔을 때 느꼈던 선득함을 기억했다. 저를 끌어당기는 계집애의 다급한 얼굴이 시선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가슴 깊은 곳의 어딘가를 기억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계집애의 등을 쓸었다. 꼬마야. 짧게 떨어진 애칭이 후드득 땀방울처럼 무릎 위를 적셨다. 섧게,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계집애는 한없이 울었다. 차게 젖은 볼이 목덜미에 짓눌리고 잘게 떨리는 손이 그의 머리를 한껏 끌어안았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지? 그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무어가 그렇게 무서웠지? 무어가 그렇게 두렵고 무어가 그렇게 공포스러워서, 뒤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해 헛발질을 하고 저도 모르게 제게 내민 그 손을 쥐고 놓으려 들지 않았지? 그는 생각 이상으로 힘을 주었다 풀려 아직도 마디마디가 저린 손을 펼쳤다 다시 쥐어보았다. 저를 내려다보며 공포에 희게질린 뺨을 했던 계집애와 제 손을 쥐고 놓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는 입술을 한번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씹었다. 꼬마야. 무어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 애칭만은 온통 부드러웠다. 계집애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어깨에 제 코 끝을 묻었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품 안에 이제야 미지근한 체온이 돌았다. 그는 눈을 깜박였다. 서럽게 끅끅 거리는 울음이 품 안으로 가득 쏟아졌다.
아.
그는 목이 매여 죽어가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계집애의 어깨를 한껏 끌어안았다. 깜박이는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왜 두려웠느냐고? 왜 그렇게 공포스러워 어쩔 줄 몰랐느냐고? 어째서 심장이 내려 앉았느냐고? 품 안에 안긴 좁고 마른 어깨가 희미하게 움틀 댔다. 나는, 아저씨, 나는, 나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목소리에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그는 외로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누구도 제 옆에 있어주지 않았고 그 누구도 제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던 시절을. 부평초보다 못한 신세로 멀의 그림자를 좇아 그를 따라다녀 제 자신에게 속했던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던 시절을. 그 때의 그였다면 이렇게 공포스러웠을까? 그 때의 그도 고작해야 제 몸들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움직이는 시체들에게 발목이 붙들리고 제 앞에 계집애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토록 끔찍하게 여겨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아니었다. 그 때의 그는 지금처럼 처참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급하기는 할지언정 공포에 질려 멍한 머리를 내리 흔들고 선득하니 내려앉은 뒷목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금의 그는. 굳어버린 혀를 움직여 그는 거짓말을 속삭였다. 괜찮아, 꼬맹아, 전부 괜찮아. 혀 끝 아래로 온갖 감정들이 딱딱하게 고여 숨도 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품에 안긴 몸은 유난스럽게 작아 그대로 녹아 내릴 것 같았다. 괜찮아. 다시 한 번 거짓말이 떨어졌다.
그는 언제나 유약함을 경계하며 살았다. 혀 위로 칼날을 두르고 심장에는 가시를 돋궈 아무도 제게 상처를 입힐 수 없게 만들었다. 외로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수 밖에 없었으므로. 동정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며, 마음에 들이지 말라. 입가에는 터진 상처를, 코에는 피가 흐른 흔적을 가지고 들어온 어린 그에게 멀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 자신을 가장 중요시 하라고, 아무도 마음에 들이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하여 그는 그렇게 살았다. 아무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것이 그를 이루는 단단함이었다. 그에게 쓸모 없는 공포를 들이게 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가 윤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 어리고 작은, 한없이 사랑스러운 계집애를 마음에 들이게 되면서. 그는 그 동안 미루어 왔던 공포들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하는 이의 눈 앞에서 맞이할 죽음의 서러움과, 공포에 질린 어린 연인에게서 쏟아지는 눈물방울의 무게와, 그리고 더 이상은 저 사랑스러운 어린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절망감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울컥 치솟은 밀랍 같은 서러움을 목구멍 안 쪽으로 욱여 넣었다. 계집애가 입술을 잘게 떨며 그의 어깨에 제 얼굴을 부볐다.
아. 그는 깊게 목을 울려 나직하게 신음했다. 아, 아, 아..... 작은 손이 달래듯 그의 뒤통수와 뒷목을 연신 쓸어 내렸다. 그는 계집애의 목덜미에 코 끝을 묻었다. 피부 아래에서 두근거리는 맥박이 느껴졌다.
이제 그는 영원히 새로이 찾아온 유약함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알지 못했기에 두렵지 않았던 시절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버려도 버려도 차오를 것이며 언제고 선득한 목덜미를 문지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저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계집애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이제 괜찮아. 절대 그럴 리 없는 말을 속삭이면서. 고개를 기울인 계집애가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문질렀다. 그는 그저 주문처럼 절박하게 속삭였다. 이제 괜찮아.... 그는 제가 어떤 곳에 빠졌는지를 알았다. 평생을 잃을까 걱정하고 이별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곱씹으며 살아야 하는 곳에 빠졌음을. 더 이상 부평초처럼 떠돌 때의 강함은 가지지 못할 곳에서 영원히 맴돌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흔히 입술 끝에 매달곤 했다. 마치 아무런 공포도 주지 못하는 곳인 양. 깔깔하게 뭉친 혀 끝에 흐릿하게 울음이 걸렸다. 그 곳의, 그 곳의 이름은, 그 수렁의 이름은....
아, 그래. 사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