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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x 에노키 

옥도사변

​-루엔

생과 사의 경계는 멀고도 가까웠다. 살아있는 것은 언제든 죽을 수 있었고, 죽은 것은 윤회를 거쳐 다시 태어난다. 반복되는 생명으로 유지되는 세계. 그 윤회는 너무나도 안정되게 느껴졌고,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뭐? 좀비?”

 

하지만 세상이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법.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을 것 같던 생과 사의 경계는 생각지도 못한 존재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응, 그러니까… 살아있는 시체라고 할까. 요괴와는 좀 다른 종류인데…”

“그래서 결국 살아있다는 거야, 죽었다는 거야?”

“…그걸 모르겠다는 게 문제겠지…”

 

사에키는 설명을 하려다 말고 말문이 막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존재에 대해 설명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글로 쓰여 있는데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서류, 제대로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염마청. 무엇하나 명확한 것이 없는 현실에 특무실은 작은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으음, 여러 의미로 어려운 일이네요. 이런 건 처음인데”

 

일을 전달받은 에노키는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상사들은 이번 사건의 일처리로 지나치게 바쁘고, 다른 동료들은 이미 현장으로 파견된 후다. 서로를 바라보던 키리시마와 에노키는 사에키에게서 서류를 넘겨받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서만 나가는 거예요? 사에키는?”

“나는 사이토 씨를 도와서 서류처리. 마츠모토는 뭔가 이 사태를 해결할만한 약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지만… 잘 될지 어떨지”

“마츠모토도 고생이 많군”

일을 나갈 옥졸도 적긴 하지만 약학 지식이 있는 옥졸은 더더욱 적었다. 키리시마는 자신의 까다로운 일에도 불만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마츠모토 쪽을 걱정했다.

“그럼 다녀오지, 에노키 가자”

“음, 알았어요! 사에키, 다녀올게요!”

“두 사람 다 조심해서 다녀와”

 

평소와 똑같은 인사. 조심해서 다녀와. 하지만 어째서일까. 사에키는 입버릇처럼 붙어버린 제 인사가 오늘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안심시키듯 되뇐 그는 상사를 돕기 위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보인 것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풍경이었다.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사람들. 방황하는 망자들, 그리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공격하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까지. 사에키의 설명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을 상황에 키리시마도 에노키도 입을 다물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저것들을 쓰러뜨리면 되는 건가?”

“일단은 그렇지”

“…쓰러뜨릴 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안 되면 되게 해야지”

 

키리시마는 검을 뽑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도 그렇게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명령이니 벨 뿐. 에노키의 말대로 정말로 자신들이 저 좀비라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애초에 죽지도 않고 저런 애매한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를 베었다.

 

“크억!”

“일단 베어지긴 하군”

 

하긴, 자신들의 무기는 원래 생자도 사자도 다 벨 수 있으니 이건 당연한가. 문제는 이제 이 좀비가 되살아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하나, 둘, 셋. 정확히 3초 쯤 세었을 뿐인데 온 몸을 비틀며 일어난 좀비는 상처 입은 몸으로 다시 키리시마에게 달려들었다.

 

“키리시마!”

그가 걱정된 걸까. 좀비의 손이 그의 몸에 닿기도 전 낫을 꺼낸 에노키는 그대로 좀비의 목을 베어버렸다. 툭. 안 그래도 썩어서 덜렁거리던 머리는 가볍게 땅으로 떨어졌고, 그제야 좀비도 완전히 활동을 멈추었다.

 

“괜찮아요?”

“…머리를 베면 죽는 건가”

“그런 것 같네요. …아니 그것 보다 괜찮냐고 물었잖아요!”

“괜찮다. 너무 소란피우지 마. 적의 이목을 끈다”

 

쓰러진 좀비를 가만히 보고 있던 키리시마는 그것에 영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는 걸 확인하고 검을 고쳐 쥐었다. 아무래도 이것들은 요괴나 괴의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일이라기 보단, 인간들의 일에 가깝겠지.

‘또 무슨 짓을’ 키리시마의 미간이 가볍게 구겨졌다.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은 그는 이 상황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어째서 인간들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하는가. 이것들은 망자도 아닌데.

 

“키리시마”

“응?”

“저기, 저거”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예외는 있는 걸까. 에노키가 가리킨 곳에는 죽어가는 사람과 움직이는 시체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망자가 있었다. 겨우 10살 전후로 보이는 망자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울먹이고 있었고, 숨을 곳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망자는 안 위험한 걸까요?”

“무엇이?”

“아니 그러니까, 저 좀비라는 애들. 살아있는 인간만 건드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덤볐잖아?”

“…!”

 

처음엔 그냥 나중에 데려갈까 한 키리시마였지만 에노키의 말을 듣고 나서는 일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좀비를 해치우면서, 저 망자를 특무실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만약 망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확실히 자신들의 책임이 되니까. 옥졸로서는 단연 이 선택이 옳았다.

“내가 데려오지, 저것들을 부탁한다”

“음, 조심해서 데려와야 해요? 울리면 안 돼!”

“이미 울고 있는 것 같다만… 노력해 보지”

 

하여간 에노키는 어린것들을 너무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자신의 안전부터 생각해야 할 텐데. 제게 붙으려 드는 좀비를 베어내는 에노키를 힐끔힐끔 보던 그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은 망자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응…? 아, 어… 어어…”

“…널 헤치러 온 게 아니다.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테니 같이가지”

 

말이 통하지 않는 좀비들 사이 이렇게 멀쩡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누구든 안심하지 않을까. 망자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키리시마의 손을 잡았다. ‘상황파악이 빨라 다행이군’ 마음속으로 안도한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중인 동료를 불렀다.

 

“에노키, 이제…”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려고 한 키리시마는 창백하게 질려가는 에노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닫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를 차례차례 제거하는 그녀는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심하게 불안해 보였다.

아아, 그건가. 키리시마는 언젠가 들었던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수많은 손들, 이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오는 입들, 손톱들…

 

“…역할을 바꿀 걸 그랬군”

제 생각이 짧았다. 혹은 섬세하지 못했다고 해도 좋겠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기 전 급히 에노키에게 다가간 키리시마는 그녀를 안심시키듯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가자, 에노키”

“…아, 응! 미안해요, 언제 왔어요?”

“방금. 자, 망자는 네가 데리고 있도록”

떠넘기듯이 망자를 넘긴 키리시마는 에노키의 팔을 잡고 죽음과 생을 초월한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마 그녀는 제가 왜 이렇게 좀비들을 상대로 혼란스러운지도 모르겠지. 본인은 모르고 타인은 아는 과거란 그런 것이었다. 무의식 속의 트라우마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걸 인지하지 못해 괜히 스스로가 이상한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고 마는.

 

‘바보 같은 실수군’

 

옥도로 향하는 경계에서 키리시마는 에노키를 달래주기 위해 그 몸을 끌어안아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녀 품에 안겨있는 망자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딱히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시선은 신경 쓰이니까.

후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마 에노키는 그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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